끌어당김의 법칙과 기도, 같은 점 다른 점

끌어당김의 법칙으로 본 기도 응답
결론부터 말하면,
“기도하면 응답이 되느냐?” → 된다.
다만 우리가 원하는 방식·시간표·모양과 다를 때가 많고,
응답이 “밖에서만” 오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부터” 오는 경우도 많다는 게 포인트예요.
이번엔 기도를
① 하나님과의 관계
② 내 무의식
③ 끌어당김의 법칙
이 세 가지를 겹쳐서 정리해볼게요.
1. 기도는 “위로만” 올라가는 게 아니라, “안으로도” 파고든다
우리는 보통 기도를 이렇게 생각해요.
내가 → 하나님께 말함 → 하나님이 밖에서 뭔가를 해주심
물론 이것도 맞는데, 여기에 하나가 더 있어요.
내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내 무의식을 만지시고,
그 무의식이 다시 내 현실을 바꿔 간다.
그래서 기도는 동시에:
- 위로 향한 대화 – 하나님께 부탁하고, 묻고, 고백하는 것
- 안으로 향한 작업 – 내 무의식 깊은 곳의 믿음·상처·두려움을 드러내고 새로 쓰는 것
- 밖으로 향한 변화 – 새로워진 마음 상태가 선택·행동·관계를 바꾸고, 그게 현실을 재구성하는 것
이 세 층이 같이 움직일 때
우리는 “아… 기도 응답이구나”를 느끼게 됩니다.
2. 무의식 관점에서 본 기도: “내 깊은 믿음을 다시 쓰는 시간”
1) 기도는 내 무의식을 드러낸다
기도할 때 나오는 말들을 찬찬히 보면, 내 무의식이 보입니다.
- “하나님, 전 늘 실패만 해요.”
→ 내 안 깊은 곳의 ‘나는 실패자’라는 신념 - “저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것 같아요.”
→ ‘나는 결핍된 존재’라는 신념 - “하나님이 저를 도와주실 줄 믿어요.”
→ 하나님에 대한 기본 신뢰
기도는 단순히 “소원 리스트 제출”이 아니라,
내가 진짜 무엇을 믿고 있는지, 어떤 존재라고 느끼는지를
하나님 앞에 펼쳐 보이는 작업이에요.
2) 반복 기도는 무의식을 덮어쓰는 과정
무의식은 “한 번의 깨달음”보다
“반복되는 말과 이미지”에 의해 서서히 바뀝니다.
- 매일 “난 안 돼”라고 생각하면 → 그 신념이 더 깊어지고
- 매일 “주님이 나와 함께하신다, 길을 여신다”고 고백하면
→ 처음엔 어색해도 조금씩 뿌리가 바뀌기 시작해요.
이건 세속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암시·자기개념 재구성과 연결되고,
영적으로 보면 말씀에 근거한 ‘믿음의 재설정’이에요.
그래서 기도할수록:
- 내 자아상(나는 누구인가)이 바뀌고
- 하나님상(하나님은 어떤 분인가)이 바뀌고
- 그 두 가지가 바뀌면서 현실을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그 결과,
같은 상황인데도 다른 선택을 하게 되고, 그 선택이 다른 결과를 불러와요.
이 전체 흐름을 놓고 보면, “기도가 응답을 만들어 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끌어당김의 법칙 관점: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느냐”
끌어당김의 법칙에서 흔히 말하는 것
“자주 생각하고 강하게 느끼는 것이
결국 네 삶에 더 많이 들어온다.”
이걸 신앙적으로 안전하게 번역하면
“내 마음이 어디에 오래 머무느냐가
내 삶의 방향과 열매를 결정짓는다.”
여기서 기도가 하는 역할은 마음의 초점을 옮기는 것입니다.
1) 불안과 결핍에 맞춰진 초점
기도를 해도 실제로는 계속 이런 상태일 수 있어요.
- “안 망해야 돼, 안 망해야 돼, 안 망해야 돼…”
- “버려지면 안 돼, 안 돼, 안 돼…”
입술은 기도인데,
마음의 초점은 계속 결핍·두려움에 맞춰져 있으면
- 선택이 소심해지고
- 사람 관계에서 집착·불신이 커지고
- 그 패턴이 다시 “역시 나는…”이라는 경험을 끌어와요.
마치 가시떨기 밭처럼,
기도의 씨가 떨어지긴 했는데 염려와 두려움이 다 잡아먹는 그림이죠.
2) 신뢰와 감사에 맞춰진 초점
반대로, 기도를 통해 마음의 초점이 이렇게 바뀔 수 있어요.
- “지금 상황은 불안하지만,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
- “이미 주신 것들에 먼저 감사하겠다.”
-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을 여시겠지.”
이건 단순 긍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신뢰에 기반한 방향 전환이에요.
이 상태가 되면
- 더 담대한 선택을 하게 되고
- 인간관계에서 덜 집착하고 더 건강하게 사랑할 수 있고
- 실패해도 “끝”이 아니라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즉, 기도를 통해
내 마음의 진동이 ‘두려움’에서 ‘신뢰’ 쪽으로 옮겨가는 것
→ 이게 끌어당김 언어로 말하면 “파동이 바뀐다”는 거예요.
4. 그럼 “응답”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오나?
보통 우리는 이걸 응답이라고 생각하죠.
“기도했더니 시험 합격, 병 나음, 돈 생김, 문제 해결됨.”
이런 외적 응답도 분명 있어요.
하지만 그 전에/그와 동시에 자주 일어나는 것들이 있습니다.
1. 내 안의 해석이 바뀌는 응답
- 똑같은 상황인데
“저주”로만 보이던 일이 “과정”으로 느껴지기 시작함. - 상한 마음이 조금씩 풀리고, 용서가 가능해짐.
2. 지혜가 생기는 응답
- 기도를 하다 보면 어떤 생각, 떠오르는 사람, 해야 할 행동이 선명해질 때가 있어요.
- “아, 저 사람에게 먼저 연락해야겠다”, “이건 내려놓고 저걸 붙들어야겠다” 같은 결정.
- 이건 내면의 인도(성령의 감동 + 무의식의 정리)가 현실 행동으로 연결되는 응답이에요.
3. 사람과 환경의 변화로 오는 응답
- 이상하게 문이 열리거나, 끊겼던 관계가 회복되거나,
전혀 예상 못 한 곳에서 기회·도움이 올 때. - 이건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영역에서의 응답이죠.
4. “아니오” 또는 “잠시 기다려라”라는 응답
야고보서 4:3(개역개정)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하나님이 보실 때 지금 그 기도 제목이
나를 더 망가뜨릴 때, 방향이 틀어져 있을 때는
막으시는 것도 응답이에요.
이때 우리는 보통 “응답이 없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더 깊은 차원의 보호/인도”가 일어나고 있는 걸 수도 있어요.
5. 기도와 끌어당김의 법칙, 비슷하지만 중요한 차이
겹치는 부분도 있고, 분명 다른 점도 있어요.
겹치는 부분
- 마음의 상태가 현실에 영향을 준다.
- 반복되는 생각·감정·믿음이 삶의 패턴을 만든다.
- 감사와 신뢰의 태도가 더 좋은 선택·관계를 이끈다.
다른 점 (이건 되게 중요해요)
- 주체가 누구냐
- 끌어당김: “내 생각·파동이 우주를 움직인다.”
- 기도: “하나님이 주체이시고, 나는 그분과 동행하는 존재이다.”
- 목적이 무엇이냐
- 끌어당김: “내가 원하는 현실을 만드는 것”이 중심.
- 기도: “하나님 뜻이 내 삶에 이루어지도록
나와 현실이 변화되는 것”이 중심.
- 한계 인식
- 끌어당김은 모든 걸 내 파동 탓으로 돌릴 위험이 있음.
- 기도는 죄, 악, 타인의 자유의지, 구조적 불의, 신비를 인정해요.
그래서 “내가 잘 못해서만”이 아니라
이 복합적인 세계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 고통당하시고 인도하신다는 시선이 들어옵니다.
6. “응답되는 기도”를 위한 작은 실천들
마지막으로, 무의식+끌어당김 관점에서
기도가 실제 현실까지 이어지도록 돕는 습관들을 정리해볼게요.
- 정직하게 말하기
- 멋진 신앙고백보다
“저 진짜 불안해요, 못 믿겠어요, 그런데 믿고 싶어요.”
이런 기도가 오히려 무의식을 여는 시작이에요.
- 멋진 신앙고백보다
- 말씀을 붙들고 기도문을 재구성하기
- 그냥 “잘 되게 해주세요”에서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같은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을 내 언어로 계속 돌려 말해보기. - 이게 무의식 스크립트를 말씀 버전으로 덮어씌우는 작업입니다.
- 그냥 “잘 되게 해주세요”에서
- 작은 응답도 기록하기
- 기도노트에 “오늘 느낀 작은 변화, 떠오른 생각, 열린 작은 문”을 적어두면
“아, 하나님이 진짜 일하고 계시는구나”라는 내적 증거가 쌓여요. - 이 경험들이 쌓일수록,
무의식 깊이 “기도하면 진짜 움직인다”는 신뢰가 자리 잡습니다.
- 기도노트에 “오늘 느낀 작은 변화, 떠오른 생각, 열린 작은 문”을 적어두면
- 감사 한 줄로 기도 마무리하기
- 끝에 항상 이렇게 하나만 붙여도 좋아요.
“그래도 오늘도 제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
- 이 한 줄이 기도의 파동을 ‘결핍’이 아니라 ‘신뢰’ 쪽에 고정시켜 줍니다.
요약하면,
기도는 “하나님께 부탁하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내 무의식을 새로 쓰고,
그 새로워진 마음이 다른 현실을 끌어오게 만드는 과정이에요.
그래서 “기도하면 정말 응답이 될까?”라는 질문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렇게 바뀌게 됩니다.
“아, 기도할수록
하나님이 내 안에서, 내 주변에서,
이미 여러 방식으로 응답하고 계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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