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풍경이 될 때
🍂 계절은 어떻게 풍경이 되는가
가을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지 않는다.
단지 공기의 냄새가 달라지고, 하늘의 높이가 조금 낮아질 뿐이다.
대륙에서 불어오는 찬 공기가 남쪽의 따뜻한 기류와 만나며,
그 경계선에서 첫 빗방울이 떨어진다.
사람의 마음도 그와 같다.
변화는 언제나 눈에 띄지 않게 다가오고, 어느 순간 풍경이 되어버린다.
나는 늘 하늘을 본다.
기후학자로서의 습관이자, 인간으로서의 감정이다.
하늘의 층운이 낮게 깔리고, 바람이 북동으로 돌 때,
나는 계절이 이동하고 있음을 안다.
그 느린 움직임은 사랑이 자라는 속도와 닮아 있다 —
빠르지 않지만, 피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가을비는 소리보다 온도가 먼저 느껴진다.
공기의 밀도가 높아지고,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약간의 차가움이 목구멍에 닿는다.
그때의 공기에는 부드러운 긴장이 깃들어 있다.
사랑의 시작이 그렇듯, 비도 그렇게 시작된다.
서로 다른 온도의 기단이 만나며 생긴 미묘한 불안정,
그 작은 차이가 결국 비를 만든다.
그날, 나는 우연히 당신을 보았다.
우산을 든 모습이 낯설 만큼 익숙했고,
그 순간 내 마음의 기압이 바뀌는 걸 느꼈다.
이건 기상현상이 아니라 감정의 응결이었다.
나는 당신이 지나간 자리에 생긴 수증기처럼,
보이지 않지만 확실한 기류의 흔적 속에서 흔들렸다.
가을비는 격렬하지 않다.
하루 종일 잔잔히 내리며 도시의 모든 소리를 눅눅하게 감싼다.
창가에 흐르는 물줄기, 빗소리에 반쯤 묻힌 교회의 종소리,
그리고 그 사이사이 스며드는 인간의 숨소리.
그 모든 것이 풍경이 된다.
시간이 흐르며 사랑이 공간을 점유하듯,
기후도 이렇게 천천히 세상을 채워간다.
비가 그친 뒤의 하늘은 더 맑다.
그건 빗방울이 모든 먼지를 씻어낸 때문만이 아니라,
비가 내리는 동안 우리 눈이 ‘기다림’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사람은 기다림 속에서 풍경을 본다.
사랑이 감정에서 기억으로 변하는 순간,
그건 이미 계절이 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묻고 싶다.
계절은 어떻게 풍경이 되는가?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사랑을 하나의 날씨로 받아들일 때일 것이다.
한때의 비, 한때의 바람, 한때의 구름이
우리 안에 남아 스스로를 배경으로 만들어버릴 때.
그리하여 결국,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풍경이 되어, 다시 우리의 일상 위로 내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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